화이트 블룸

최설 - 2025년 겨울호

2025-11-04

화이트 블룸

 

 

최설

 

 

 

 우리는 단어보다 표정을 먼저 배웠지 솔직을 이야기하기 위해

서 솔직한 초콜릿 솔직한 냉장고 틀 안에서 얼기 시작한 물처럼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조금씩 굳어가는 것들

 

 한꺼번에 있었지 갈변한 수국들 어쩔 줄 모르던 네 얼굴처럼

그림자처럼 밤의 개가 되어 너는 말을 했다 한번도 희지 않았던

표정으로 수국은 더러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달걀이 깨졌는데 발이 부서진 것처럼 울고 있었지 한참을 쓸어

모아도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흐르던 너는 알 수 있을까 아침이면

괜찮을 거라고 어깨를 두드리면서

 

 오래도록 달걀을 저어 거품은 날리고 불 꺼진 냉장고에서 초콜

릿은 녹고 있었다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거짓말 무엇도 부르지 못

할 목소리로 여긴 당신 이름이 너무 많아 틀 안에 부으면 처음처

럼 될 거라 믿었지만

 

 굳은 초콜릿은 온통 흰 얼룩

 흔들리면서 가루 날리고

 가을이 끝나도 수국은 오래도록 서서

 

 

 

 

최설 시인

2015년『현대시』등단

시집: 『 윤동주 시 함께 걷기』,『 핑크는 여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