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 안 - 2025년 겨울호
2025-10-29인터뷰
김 안
완전한 책을 쓰고 있네. 자네도 곧 길모퉁이에 서 있는 노인들을 보게 될 것일세. 이 책은 그들을 위한 것이지. 자네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부서진 계단 아래에서 다시 태어날까 무서워 모여 있는 이들인 적도 있을 것이야. 이 책은 또한 그들을 위한 것이지. 언젠가 국민학교 동창의 장례식에 간 적이 있네. 한여름에 치르는 얼어 죽은 이의 장례식이라니, 모두가 혀를 끌끌 찼어. 구름처럼 느린 증오와 분노가 흘렀지. 냉동 창고였어. 문이 잠겨 있지도 않았다는데, 손톱이 모두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발버둥을 친 흔적이 있었다고 유족이 전했지. 경찰을 사주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어. 그를 위한 것이지. 여기 책상 구석에 놓인 돌멩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네. 이 동네에는 한 미친 아이가 있었어. 바깥에만 나오면 새가 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지. 그러다 새 둥지가 있는 나무를 발견하면 그 위에 올라가려고 했어. 종종 나무 위에서 그 아이를 발견하곤 했는데, 어느 날엔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가 내려오지 못하게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버렸어. 아이는 새가 아니었기에 떨어졌지. 이 책은 다시 돌아오지 말라며, 다시는 새가 되지 말라며 제 아버지가 죽은 아이의 입에 넣어둔 돌이네. 새를 위한 것이기도 하네. 들불처럼, 공포처럼 온 도시가 불길에 휩싸였었지. 우린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어. 붉은 연기가 사람들의 머리와 지붕으로 가라앉았네. 영영 바닥이 없는 것들의 색이란 게 무엇인지 알았지. 그 불은 냉동 창고에서 난 것이었네. 열네 살이었던 동창 아들의 짓이었지. 노발리스는 “불꽃 속에서가 아니면/ 어디서 그대는 새를 잡는가?”라고 썼지. 나는 불 속에서 그 아이들이 새가 되는 것을 보았네. 어느 날엔가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책을 쓰고 돌아오니, 누군가 내 자리에 바위처럼 누워 있더군. 그를 위한 것이네. 내가 없어도 그가 완성해주겠지.
*
선생은 오랜 인터뷰를 끝내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함께하자고 했다. 멀고 먼 세상에서 온 겨울의 퍼런 발이 쉴 새 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선생은 이미 완전한 책의 한 페이지 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눈밭 위에는 개의 발자국만 찍혀 있었다.

김 안 시인
2004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 『오빠생각』, 『미제레레』등
제5회 김구용시문학상, 제19회 현대시작품상, 제7회 딩아돌하작품상, 제3회 신동문문학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