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한명희 - 2025년 겨울호
2025-10-29서랍
한명희
의자를 놓고 올라가도 닿지 않는 서랍이 있다
닿지 않는 서랍
닫아놓은 서랍은 벽이 된다
못을 박을 수도 사진을 걸 수도 없는 벽
가끔 서랍에 손끝이 닿기도 한다
그때 서랍은 달그락 소리를 낸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서랍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남편을 닮았다 까치발로도 닿지 않는 남편
의자를 여러 개 겹쳐 놓아도 닿지 않는 서랍이 있다
자꾸자꾸 높아지는 벽이 있다

한명희 시인
199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 『스위스행 종이비행기』, 『꽃뱀』등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매계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