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
이미산 - 2025년 겨울호
2025-10-27식목일
이미산
네가 생각날 때
나는 산사나무 묘목을 구해
땅을 파기 시작한다
언 땅은 수도원의
닫힌 문 같아서
보습을 튕겨낸다
식목일은 아직 멀었지만
여름의 꽃, 가을의 열매, 묘목을
구덩이에 넣기 전 생각한다, 사랑은 두 사람이 두 손으로
동시에 잡는 걸까, 하나씩 손을 모아 한 쌍을 만드는 걸까, 이를테면
전부를 쏟아내는 소란한 꽃, 한 몸이 되는 손안의 꽃, 그리고
펼쳐지는 그 나무에 대해
기도하는 너의 모습이 필요해
나는 꽃 속에 둘러싸인 우리를 타임캡슐에 넣어
묘목을 심는다
주머니 같은 집, 거기
출렁이는 어둠을 끌어안고 조금씩 자라는
우리
우리는 다시 우리를 낳아
산사나무 숲이 된다 너는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그러나 계속되는 이야기
너를 푸르게 적시는 일
흘러간 빗줄기가 구름 되어 나를 내려다보듯이, 무지개가 없어도
삶이라 부르듯이
눈 감고 듣는 숲
들이치는 너라는 해일
식목일은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외롭지 않은 세상 쪽으로
기울고 있는
이파리가 있다

이미산 시인
2006년 《현대시》 등단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 『저기, 분홍』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