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푸른 반점들
최형심 - 2025년 겨울호
2025-10-27깊고 푸른 반점들
최형심
히바*에 가면 푸른 등(燈) 하나를 사겠네. 당신과 나 사이에 등을 걸고 우리는 머나먼 밤으로 건너가겠지. 푸른 타일의 미나렛** 사이로 어두워 보이지 않는 허공이 내려오면 다섯 개의 줄을 그리고 지느러미 하나를 허공에 걸어두겠네. 한밤이 그리움 쪽으로 기울어지고 신의 암호 사이에 산호초들 자라나 첨탑에 가둔 고래를 풀어주리. 바다를 본 적 없는 사람들 사이로 무색의 물길은 흐르고, 밤하늘을 헤엄쳐 바다를 떠나온 이를 만나면 물길을 거두어 주겠네. 그리하여 텅 빈 허공에 고래가 헤엄칠 때, 돌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과 희고 푸른 밤을 나누어 가지리. 남몰래 아름다운 사람과 흔들리고 싶은 밤, 얕은 바람에 밭은기침 소리 들려오고…… 시월에 떠나는 사람을 위해 별빛은 하루를 더 머물다 떠나겠지. 한밤의 긴 숨이 물방울 달로 그리운 이의 머리맡에 고일지도 몰라. 적막을 길어 올리는 물길을 타고, 나는 마른 날개를 비빌지도. 나비는 겹겹이 나비가 되고 꿈은 겹겹의 꿈이 되는 곳 히바에 가면…… 이교도의 신들 앞에서 차마 너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겠지만, 수분이 많은 세계에 비리고 푸른 반점들 번지고 있겠지. 하늘에 통점들 빛나고 있겠지.
*히바: 우즈베키스탄의 옛수도
*미나렛: 탑

최형심 시인
2008년 『현대시』 등단
시집 『나비는, 날개로 잠을 잤다』, 동화집 『얼음벽 속의 학교』 등.
심훈문학상, 한유성문학상 등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