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으로 가요

김미정 - 2025년 겨울호

2025-10-24

  자작나무 숲으로 가요

 

 

  김미정

 

 

  흰 붕대를 감은 세계

  숲을 지탱하는 나무들의 침묵이 무성해

 

  우린 겨울을 통과하기 위해

  눈물과 다정을 두르고 걷는다

 

  숲으로 가는 길은 빙판이었지

  시간의 경사는 늘 미끄러워

  서로 잡은 손을 놓는다

  넘어질 땐 혼자가 나아

  불완전함을 아끼지 않는 날들

  우리가 날마다 닿는 곳은 그쪽 어디쯤일까

 

  창백한 창을 견디는 나무들이에요

  헐벗은 가지마다 폭설이 내려요

  마음과 마음을 쌓아 꽝꽝 밟으면 갈 수 있을까요

  안녕은 부서지고 말라가는데

  그릇 밖으로 넘친 얼음의 표정이에요

  오해와 착각이 엉켜있는 숲이지요

  나란한 입김과 눈송이가 포개지는

 

  어느 날, 어느 숲

  세상의 끝과 끝을 이어붙이며

  눈이 날린다

  만질 수 없는 것들이 대기를 뚫고 간다

  서둘러도 이미 늦어버린 12월

  오늘의 그림자는 투명을 닮아가고

 

  기울어진 허공이

  어둠의 비밀을 기록하며

  숲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누군가 잃어버린 털모자가 아직 따뜻하다

 

 

 

 

김미정 시인

2002년 《현대시》 등단

시집 :『하드와 아이스크림』,『물고기 신발』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