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불어와 생활도로

고형렬 - 2025년 겨울호

2025-10-24

  산바람 불어와 생활도로

 


  고형렬


 

  온통 쓸쓸함으로 가득한 나라에 도착했다, 빼곡한 대숲도 살아 있어

  참 햇살과 공기가 하나로 역인 바자울의 작은 도시

 

  별건은 없다, 그저 사람과 옷과 벽과 책까지 스스로 문장을 고치는 계절이다

  철도하부 밑에 지나가는 하천에 거꾸로 선 건물의 하늘도 모든 통장을 내놓고

  간결한 주렴조차 걷어내는 중

 

  돌아가면서 발각되는 낙엽의 기척이 곳곳에 떨어진다, 단추와 수나사만한 곤충들은

  마지막 인사로 삼각형의 작은 눈을 영원히 감췄다

  신의 음성을 두고 생명의 적막을 뒤따라가고 없다

 

  짐작건대 저는 어디쯤 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그 차가운 머리끝을

  렌즈처럼 만져보며,

  끝내 해가 걸어오는 그 바다 아침에 등 돌리진 않았습니다

  나는 온 기관을 동원하여 이 낮의 생활도로를 걷는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말의 무기도 두고 생명 대 생명으로 서로의 눈앞에 마주 앉아 잠시 봅니다

  코스모스와 맨드라미처럼, 뭐 길과 달처럼

  아니면 사과와 사람처럼

  필름 통 같은 주둥이에 붙은 눈앞에 마주 앉아 맛이 가득한 검은 기운 한 조각,

  쓰지 못할 한 편의 시를 위해 가을의 입을 열고 그 혀 위에 올려놓는다

 

  산바람이 오는 이 생활도로는 가지 못할 것이 없는

  내 마음의 이면이지만,

  네 다리로 이곳에 함께 존재하는 너하고 나는 하나의 줄에 묶여서 가고 있다

 

  다만, 너를 생각하는 것도 가을은 벅차고 아까워서

  오늘도 뒤로 돌아온 나는 이마적 가버린 젊은 날처럼 시를 쓴다

  자유가 아닌 숙제 같은 시를 쓰느라 남아 있다

 

 

 

 

 

  고형렬시인

  1979년 《현대문학》작품활동
  시집 :『대청봉(大靑峯) 수박밭』,『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등.